"왜 사랑해야 합니까?"

Must We Love One Anther?

John. 13:31-35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자마자 주님은 자신이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이하여 영광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땅에 계시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 “사랑”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겠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의 의미를 살피겠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팔려 고난 받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과연 옳으신 판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잘 사용하는 금언 중에 “고난 없이 영광 없다(No Cross No Crown)”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는 고난이 곧 영광이라는 것이고 고난 없인 영광도 없다는 것이며 영광을 얻거나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먼저 받거나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르침과 교훈은 고난을 면하거나 피하라고 합니다. 고난과 고통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바로 이 점이 세상의 모든 종교나 가르침과 차별되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고 그 고난을 통과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도 형제나 자매, 그리고 이웃의 고난을 나눠지고 심지어 이웃의 죄책마저 함께 지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웃의 고난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영광이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입니다. 이웃 때문에 억울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상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모든 인간의 불행의 시작은 바로 죄책으로부터의 회피와 전가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책임의 회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과 이웃의 삶을 위한 책임을 져버린다면 우리를 통해 받으시는 하나님의 영광도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용산 참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저들의 고난과 나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무슨 관계일까요? 이웃의 고통스런 현실을 공유하고 나눠지려는 마음과 자세를 통해 하나님은 오늘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기뻐하실 것입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난을 받고 죽으시면서 하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을까요?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떠난 자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을 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현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존재하시는 방식입니다. 이를 뒤집으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사실상 예수님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의 행위 하나 하나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처절히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증거 되고 우리가 그의 제자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그 안에 계십니다. 더 이상 세상은 말로는 믿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가운데 세상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말씀은 잘못 해석하면 가언 명령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you must love one another."이라는 명령문이 앞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라는 문장이 뒤이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글 고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많은 오해가 생깁니다. 사랑은 옵션이다. 그리고 사랑은 마음이 생겨야 한다.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만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사상은 더욱이 아닙니다. 사랑은 가장 단순한 실천이요, 행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새 계명은 손과 발의 실천을 통해 마음과 머리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주문이나 맆 서비스가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죽어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평범하며 가장 난해한 사랑의 무한한 신비입니다. 실천한 자만이 느끼고 깨닫고 알 수 있는 신비한 진리입니다.

끝으로 서로 사랑하는 길만이 우리가 우리의 정체와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해야만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해야만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사랑은 형제의 허물과 죄를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희생입니다. 용서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우리가 그의 제자라는 사실을 몸과 행위로 증거 하는 축복된 한 주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2009년 2월 8일 열린 교회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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