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이 있다고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때로는 자신만이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불평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 있었다. 나도 일찍 5학년(11살) 때 어머니의 품을 떠나 큰 도시 전주로 왔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바로의 궁전으로 보내진 모세처럼 말이다. 한창 어머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야 할 어린 나이에 순자(20살) 누나의 희생과 도움으로 주홍(14살)이 형과 형재(7살) 동생이 함께 왔다. 내가 살던 마을 깊은 산속에서는 자동차를 볼 수 없고 전기 불이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전주라는 큰 도시는 자동차 버스, 기차, 그리고 밤을 밝게 비춰주는 화려한 전기 불과 높은 빌딩들이 나에게 매우 감당하기 힘든 충격의 문화도시였다. 육촌 형님께서 허름한 방 한칸을 배려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자취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나날의 생활 이지만 새로운 도시생활은 너무도 신기하고 화려한 궁전과 같았다. 깊은 산속에서 목동으로 살아가던 다윗이 사울 왕의 궁전으로 생활 환경을 옮긴 것 처럼 말이다.

3년간의 고등공민학교를 미치고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응시하여 그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내게는 몸의 피부병과 같은 질병과 몇 개월을 싸우고 결국 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고 말았다. 내 마음의 실망과는 반대로 어느 날 나의 아버지는 매우 기쁜 모습으로 집에 돌아 오셨다. 종친 중에 한 사람이 전주 시장으로 발령을 받아 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의 아버지는 내가 성공하는 것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국 전쟁이 6.25가 끝 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살던 마을은 질병 이 만연했고 경제는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밭농사 약간의 벼농사를 일구며 생계를 어렵게 이어왔던 아버지는 육체적 노동으로 살아가는 농사일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움으로 나는 시립 도서관에 일용직 직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꿈은 벌써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큰 사업은 하루 아침에 빚 더미로 변하고 큰 실망과 좌절에 빠져들었고 4 아들과 4딸을 포함해서 10명의 대가족을 거느리는 가장으로서 아버지는 가능하면 어린 나이지만 자녀들이 하루빨리 취업을 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16살에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지원하게 됐다. 또 형과 동생들이 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나는 그로 인해서 이 직장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큰 꿈이 있다면 사람들이 공부 잘하고 우수하다고 인정하는 학교에 입학해서 그 학교 교복과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이었다. 즉 사회로부터 인정 받고 뽐내는 것이 고작 나의 큰 꿈이었다. 그러나 나의 형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 와서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구원과 선택의 길이요 섭리였다. 가정의 형편은 내 계획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내 인생의 큰 교훈을 준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이 가난하고 소외된 청소년의 외로움 속에서 우뚝 일어선 아브라함 링컨이다. 많은 번민과 좌절에 신음하고 있을 때 링컨의 생애를 기록한 책 한 권이 내 눈을 번뜩 띄우고 말았다. 아브라함이 너무도 어려운 형편에서 읽고 싶은 책을 살수 없어서 도서관에 취업했었다. 그러나 그는 맡겨진 일에 몰두하기 보다는 책 쉘브 코너에 숨어서 책만 읽다가 쫓겨났던 그분의 전기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에게 동질감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브라함보다는 형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도서관에 입사를 전폭적으로 권유했던 사촌형님은 나의 야간학교 진학 결심에 직접적으로 권유하며 영향을 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 학력을 배경으로 시청 정식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영생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을 하기로 했다. 60명 선발하는 시험에 7.8:1의 경쟁을 보였다. 모두들 나이도 정규과정의 학생들보다 1-2살 많았다. 명문 고등학교에 희망을 걸고 있던 나로서는 그 희망이 깨진 뒤 이 학교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내일부터 시작하는 학교 일과를 알 수가 없었기에 학교 입학식에 꼭 참석해야만 했다. 할 수없이 나는 공무원 복장을 하고 학교로 갔다. 나보다 일년 선배 되는 2학년생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 선배들 중에는 나를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동생 중에 누가 입학하는 식장에 학부형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생각했다. 선배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달려와서 꾸벅 인사를 하고 나를 학부형 석으로 안내했다. 나는 진실을 말 할 형편이 못됐다. 그냥 신입생의 한 사람이 학부형으로 변신하여 침투해 있을 뿐이다. 입학식의 모든 순서가 나에게는 매우 지루했다. 단 한가지 내일 몇 시에 수업이 시작 하고 몇 시에 끝나며 교실이 어디인지를 알아놓는 것이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모든 순서가 끝나자 곧바로 나는 사무실에 왔다. 도서관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은 나의 집이었다. 아무튼 입학식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 수업 첫날 이었다. 더 이상은 교복을 착용을 거부할 수 없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한 순간 어제 밤 나에게 머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올렸던 선배 학생은 내가 신입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네놈한테 속았다는 눈치였다. 그로 인해 나는 복장불량이라는 명목으로 한번 혹독하게 당했다. 

  나는 곧바로 학교생활에 실증을 느꼈다. 내 생활에 대해 많은 회의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남들은 공부하고 있는 낮에 일하는 것이 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학교는 내가 처음부터 오고 싶지 않은 학교였다. 또 처음 교과서를 받았을 때 그림은 하나도 없이 깨알처럼 빼옥한 글씨의 성경전서라는 책 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은 매우 지루하고 내 가슴은 학교 박에 있었다. 나는 가정 형편에 따라 대학진학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일찍 대학을 포기한 나는 오직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희망이 없는 소년이었다. 나는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목마른 나그네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삶의 의욕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매우 약해져서 나의 무기력 함을 극복 하려고 매일 밤마다 운동을 했다. 벌써 일년이 지나 나는 합기도 Black Belt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새 희망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학교 정책에 따라 매주 월요일 학교 채플에서 드리는 예배를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난의 현실 때문에 내 희망을 잃어버리고 할 수없이 파도의 힘에 떠밀려오듯 야간 학교에서 입학해서 의욕을 잃어버린 나에게 주님은 잔잔한 음성으로 찾아 오셨다. 영생학교 설립자 이신 강홍모 목사님의 설교는 불교가정에서 태어나 무엇이 진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참 진리를 찾고 싶어 갈급한 내 가슴에 시원하게 적셔주는 단비 였다. 이날 내가 받은 은혜는 독수리의 훈련이었다. 강한 훈련을 받은 자 많이 세상의 강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40:28~31)


  나는 오늘부터 기독교에 개종을 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삶의 희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번개처럼 내 마음속에 스쳐가는 음성을 듣는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이 말씀은 우리 가정에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우물가에 여인처럼 목마른 심령이 사막에서 생수를 얻은 심정이었다. 매일 나는 나의 삶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고 감격했다.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은 없어도 나의 삶은 매일 기쁘고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희망이 깨져서 민감하고 반항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한 청소년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다. 삶의 회의로 희망이 깨지고 무기력해 질 때 주님은 나를 만지고 계셨다. 야간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창피해서 공무원 복장을 하고 입학식에 참석하여 학부형들 자리에 앉아서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던 철없는 나에게 구원의 주님은 찾아 오셔서 함께 계셨다. 오늘도 주님은 희망이 없어서 방황하는 청소년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의 희망은 명성 있는 학교가 아니다. 취업의 성공도 아니다. 가정의 규모가 크고 작은 것도 아니다. 운동으로 체력단련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그를 영접한 것 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만홍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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