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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뇌하는 오바마 당선자(출처:nation.ke) |
전 세계의 이목이 미국의 대통령선거에 쏠려있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뚜껑을 여니 오바마의 승리였다.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흑인, 그것도 케냐출신 이주자의 2세로서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방황하던 청소년기를 이겨낸 아직 지천명에도 이르지 못한 젊은이를 그들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예년에 없었던 투표율에 사람들은 놀랐다. 특히 젊은 층과 유색인종들, 그리고 많은 소수의 약자들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선거전이 진행되는 동안 백인들의 결집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모두 빗나갔다는 것이 개표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오바마는 “변화”(change)를 구호로 내세웠다. 선거운동 내내 “변화”를 연호했고, 연설과정에서도 “변화”를 외쳤다.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그의 “변화”를 위한 호소에 열광적으로 응답했다. 그렇다고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는 ‘변화’를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변화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이라는 말을 했다. 두 후보는 사실상 “변화”를 말한 것이고, 변화만이 미국이 살길이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유권자들은 오바마의 “변화”를 선택했다. 그들은 “U.S.A.!”를 연호하며 미국의 승리를 기뻐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오바마를 선택했는가? 그것은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고, 변화를 보장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되는 그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하면, 사실 막연해진다. 왜냐하면 변화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나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변할 것을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화”를 원했고, 그 “변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아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변화는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변화이든, 그 변화의 내면에는 공통된 것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이 바라는 “변화”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하는 변화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식주’를 염려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화당이 그동안 해온 것으로 보아 매케인 후보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이 요구하는 변화는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새로운 것은 곧 ‘의식주’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수준이하의 판단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나 정치에 있어서 어떤 이상(이념)도 ‘의식주’문제를 모른 체하고서는 그 이상의 것을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의식주’라는 표현은 인간의 기본권을 충족시켜야 하는 요소들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이상일지라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결코 선택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변화” 혹은 “새로운 것”으로 표현되는 것을 이상인 것처럼 말했고, 그것을 위해서 정부를 바꿔야 한다는 선거유세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새로운” 것과 “변화”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 목적 내지는 그 변화의 내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단지 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권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누가 되었든, 어느 정부가 되었든 국민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일을 우선순위에서 미룬다면, 국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오바마를 선택해야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념과 이상도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들의 가치관은 더 개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위한 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정치적인 승리도 기본권의 연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유색인종과 소수인종을 대변하는 신분을 가졌다는 것이 그들을 결집하게 했던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많이 불평등한 것이 사회적인 문제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이 피부색의 한계를 넘어서 미국의 주류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위치를 가지기 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때문에 유색인종과 소수인종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실망한 백인들과 젊은 층, 여성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선 결과 오바마는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를 통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오바마라고 하는 한 사람의 흑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며, 그 상징성에 있어서도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다.
오바마는 변화를 주장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본권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부와 교회들은 과연 이 기본권에 대한 이해와 대처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종전 목사/ 인천만수남부교회(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