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을 통해 성취되는 구원"
The Accomplishing Atonement through the Betray
요한복음 13:21-30
오늘 본문은 성서의 난해구 중 하나입니다. 유다의 배신을 아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아시고도 그 고난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을 미리 알았다면 왜 배신을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느냐? 아니면 예수님이 그토록 어리 섞은 분이냐? 메시아가 그토록 무력할 수 있느냐? 등의 다양한 의문과 해석이 분분한 본문입니다. 오늘은 그 의문에 관한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종종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수를 믿고 손해 본다거나 도저히 예수님의 처사에 공감할 수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아 본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것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해 사는 것과 같은 일들을 매우 많이 경험했습니다. 세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처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일들을 신앙 때문에 번번이 포기하고 당해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늘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내가 혹시 잘못 믿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비로소 명시적으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겠다?”고 밝히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까지 하십니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행할런지,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능력이라고 하면 기적과 같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역사를 이루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고 물위를 걷고, 오병이어로 수천 명이 먹고, 소경이 눈을 뜨고 하는 일과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의 일종입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유다의 배신을 관용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무엇보다 큰 능력과 메시아 되심을 발견합니다. 제자의 배신, 그것도 가장 아끼고 신뢰했으며 사랑했던 제자로부터의 배신, 가증스럽게도 끝까지 숨기고 돈 몇 푼에 자신의 스승을 팔아먹는 그를 관용하시는 그 넓은 가슴이 존경스럽습니다. 비록 하늘을 울리고 바다를 가르는 영웅적인 모습은 없을지라도 오히려 그 넓고 깊은 배려와 관용의 태도가 과연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인내하시는 주님이 진정한 우리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능력입니다. 할 수 있음에도 자신을 절제하고 자제하고 인내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주님이 선물인 믿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이미 그 결과와 승리는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그것이 없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앙의 방식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상대방의 배신에 보복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지는 것 같고 당하고 낚이는 것 같을 지라도 반드시 승리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이브라함 링컨과 그의 참모, 국방부장관이었던 스탠톤의 일화는 예수님과 유다의 배신과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링컨의 참모였던 스탠톤은 링컨에 의해 기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도 모르게 틈만 있으면 링컨을 비방하고 비판했습니다. 털복승이 원숭이, 진화가 덜된 미개인 등등 인신 공격적 발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링컨이 저격을 당해 서거하자 그의 주검 앞에서 가장 처절하게 울었던 이가 바로 스탠톤 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토록 눈앞에 있는 당장의 유익과 이익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것이며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으로 인내하고 사랑하며 관용하는 방법에 의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제자의 배신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세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 약하고 무능한 것이 지혜롭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것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전혀 다른 오히려 세상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전도란 말로 하는 것도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재간에 현혹되어 예수를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역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련함과 한계, 그리고 그 관계의 미숙함과 부족함에도 부룩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우리의 구원과 그것을 누리는 삶에 있어서 일관된 주장이요 가르침입니다.
*2009년 2월 1일 현현 후 네 째주일 열린 교회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