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관계를 복구하라!"
Recover Broken Relationship!
John 14:1-24

 

 

 

오늘 본문에는 세 사람의 제자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묻습니다. 그러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고 답하셨습니다. 둘째,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겠다 하셨습니다. 셋째 다른 유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대화중에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를 사모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대화중에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는 단절되고 분열된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애절한 복음입니다. 역사의 모든 비극은 관계의 파괴로부터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아, 자신과의 관계의 파괴로 인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분열 상태가 되고 개인 간의 관계의 단절로 증오와 다툼이, 사회적인 단절로 인한 계층, 계급 간 갈등이, 국가 간의 단절로 인해 전쟁과 테러가 발생합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의 단절로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의 대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I and Thou)라는 책에서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문제는 나와 너라는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가 나와 그것(I and It), 사물의 관계, 즉 비인격적인 관계의 타락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둘째, 인격적인 관계의 회복보다 선행되어야할 것은 신앙, 즉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 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국가와 국가 사이의 단절된 관계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자신의 분열되고 단절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로인해 인류가 타락했으며 그 결과 모든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은폐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불행과 비극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지엽적인 문제로 자기 합리화를 통해 덧칠하고 있기 때문에 불행과 비극의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온갖 불행과 비극은 종식시키고 행복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끝으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과 나의 회복된 관계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 다른 사람들도 그 관계로 초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나를 통해 하나님과 아들을 알고 그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아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즉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의 회복을 통해 세상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세상에 대한 책임성이요, 대리사상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책임적인 삶이어야 하고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은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단절된 관계를 직시하고 복구할 수 있는 창문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거짓 없고 가식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행위를 통해 실천될 때, 세상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 엄청난 비밀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아들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그를 사랑하는 신앙은 곧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반복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이론과 사상은 더욱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푼의 에누리도 없이 정확한 구체적인 “실천”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이듯,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복구되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 아버지가 내 안에 내 안에 아버지가 혼연일체를 이룬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구원은 진정으로 순간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구원입니다. 이를 통해 단절된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신비스런 기적이 여러분의 삶 속에 나타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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