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해설: 

요한 복음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며 충실하고 사실적으로 영상화한 3시간짜리 움직이는 성경말씀이다. 캐나다와 영국의 합작품으로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예수의 일생을 전연 극적인 해석 없이 복음대로 묘사했지만 깊이와 폭을 지닌 훌륭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캐나다인으로 유대계인 흥행업자 가스 드라빈스키가 제작하고 영국감독 필립 새빌이 연출했으며 예수 역은 낯선 영국 연극배우 헨리 이안 큐식이 맡았다. 제작자는 멜 깁슨의 영화 '예수 수난'에 쏟아지고 있는 비난을 의식한 듯 개신교와 가톨릭 및 유대교 학자들로 자문위를 구성, 영화를 감수케 했다. 성경은 희랍어 성경 대신 미성경학회가 1966년에 번역, 발간한 굿 뉴스 성경을 사용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사운드 오브 뮤직)의 자비롭고 인자한 내레이션으로 성인 예수의 삶이 묘사되는데 리얼리즘 영화라 말할 수 있을 만치 모든 것이 사실적이어서 성경 내용을 직접 경험하는 기분이다. 예수의 제자들 선택과 성지의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행한 설교와 기적 그리고 끊임없는 바리새인들의 적대의식과 위협 및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상세하니 묘사하고 있다. 

일종의 서사적 역사극이라고도 하겠는데 영화를 보면서 왜 궁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고 또 왜 유대인 상층부 지도계급이 예수를 박해했는지를 잘 깨닫게 된다. 나름대로 당시의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하면서 새 경험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는 예수를 박해하고 빌라도에게 그의 처형을 요구한 사람들은 극히 한정된 유대인지도층임을 강조, 유대인 전체가 예수를 죽인 자들이 아님을 주지시키고 있다. 세트와 의상과 건축양식 등 자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충실하니 만들었고 많은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이 동원됐다. 예수 역의 이안 큐식은 50~60년대 예수 영화의 예수처럼 근검 엄숙한 모습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지닌 보통 사람 모습으로 매우 확신에 찬 연기를 한다. PG-13. 일부지역.

■ 영화정보

http://www.imdb.com/title/tt0377992/


■ 요한의 복음서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요약 : 신약성서의 4복음서 중 마지막 책.
구분 : 복음서
저자 : 요한
 
본문 :

  4복음 중 가장 뒤늦게 성립되었다.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마태오 ·마르코 ·루가 등의 복음서)와는 내용적으로는 거의 공통된 데가 적으며 ‘요한신학(神學)’이라고 할 만큼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복음서는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어 말씀의 성육신(成肉身)으로서의 빛, 하느님의 독생자에 관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나타난 세례자(洗禮者) 요한에 관한 설명, 갈릴래아 지방의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물을 술로 바꾼 기적, 바리사이파의 지도자 니고데모와의 대화, 예루살렘 베짜타 연못가의 고질병자 치유와 장님의 개안, 예수 자신의 증거에 대한 설명, 죽은 라자로의 소생, 예수의 부활 등, 다른 복음서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가 실렸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적과 표적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라는 증거로서, 그리스도교 교리(특히 교회에 관한)와의 유기적 또는 상징적인 연관성에 관해서 해설하고 있다.
  또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생명이나 사랑(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 교도의 사랑)이 더욱 강조되고 있어 ‘사랑의 복음서’라고도 한다. 12 사도 중 제배대오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쓴 것으로 보고 있다.


■ 요한복음의 양식과 특징

GOSPEL OF JOHN / The Genre and Character, Theology of John | 신약, 사도요한신학 2004/06/24 19:06
                                                             - Dictionary of Jesus and Gospel -

3. 요한복음의 양식과 특징
 
3.1.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

  요한복음과 다른복음서 사이에서 차이는 중요하며 이것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와의 관계성에 의문을 제기하게한다. 이러한 의문은 새로운것이 아니며 이것은 단지 근대 성서비평의 산물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기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요한복음은 "영적 복음서"로  물질이나 육체에를 자세히 말하는데, 모든 복음서사이에 차이점들을 초기에 자세히 설명하였다.


3.1.1 사도요한의 차이

  요한복음과 다름 세복음서사이의 특징적인 현저한 차이점을 보면.

  (1) 자료와 내용

  요한복음서 안에서 볼 수 없는 것: 비유; 사단축출; 나병의 치유; 세금원; 사두개파; 죄인과 식탁교제; 유년기 이야기; 예수의 시험; 변형; 산 위 마태의 설교 자료; 주님의 만찬 상황. 다른 한편, 요한복음의 다음과 같은 자료, 그러나 공관복음에는 없는 것: 예수의 요단 세례사역;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남; "나는-이다"는 말씀, 긴강화;  7-11장안에 대부분의 자료; 세족; 그리고 예수님과 빌라도와의 대화. 요한복음의 기적은 단지 급식이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5천명을 나타낸다. 


  (2) 용어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용어는 공관복음에서 종종나타나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단지 2회 나타나고  그리고 요한복음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술어 증인, 세계, 인내, 사랑, 믿음, 빛, 어둠, 삶 그리고 아버지는 다른복음서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다.


  (3)  예수님의 사역연대와 헌신

  공관복음서에서는 예루살렘 방문이 단지 그의 삶 가운데 끝에 나타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서의 사역이 많이 나타난다. 성전청결은 복음서안에서 초기에 위치하지만 오히려 후반에 나타난다; 예수와 요한의 세례사역은 작은시기에 나타나고; 기름부음으로 입성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만찬은 다름복음서보다 24시간 이르게 나타난다.


  (4) 메시아적 비밀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은 사역과정에서 베드로를 통하여 메시야로 처음고백되어지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메시야로 인정하는 제목이 있는데 -첫장에서 6회 나타난다(1:29, 34, 36, 41, 45, 49!).


3.1.2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의 관계성 의문

  20세기 시기동안 가장 흥미있는 주장은 요한과 다른 복음서와 관계가 있다는것이며, 그리고 그것들의 보충이며 해석적인 역할을 한다. 때로는 그 이론에 있어서 요한은 다른복음서에서 역사적 가치를 감하는 해석을 기록하였는데,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사이의 과제와 차이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떤 학자들은 게다가, 요한이 다름 복음서를 대신하거나 제자리에 놓는다고 말안다.  모든 그러한 이론들은 요한이 알았거나 다른 복음서와 유사하다는 이론에 의지하여 주장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그러한 이론은 도전을 받았다.
  요한복음이 다른복음서에 의지한다는 이론은 P. Gardner-Smith와 C. H. Dodd에 의하여 조심스럽게 주장되고, 이것은 넓게 알려졌으며 의심없이 수용되었다. 요한복음에 이러한 이론은 세복음서 사이에서 지식이나 관련없이 구성되었다.  모든 유사한 그것들 사이에 기록이나 구전을 통하여 전승되어 수용할 수 있었고 요한복음은 공광복음과의 접근없이 사용되었다. 그 차이는 다양한 전승의 차이와 -목격 자료의 지배없이- 그리고 요한복음의 높은 해석성격 때문이다.
  요한은 아마도 다른복음서을 알았으나 그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를 사용하는 그것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않았다. 요한은 다름복음서의 해설이나 설명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하지 않았다. 요한은 교리나 신학은 공관복음서의 생명이나 역사그것과는 같지 않았다. 최근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는 그 이야기의 저자의 해석이 모양지어진것의 과정에 대한 차이이다. 이것은 요한복음서의 성격의 물음을 끌어낸다.
 
 
3.2. 요한의 복음서의 역사적 특성

  요한과 다른복음서 사이의 차이점의 인식과 요한복음의 해석특징적 경향은 요한복음에서 역사적 전승에 대한 자연적인 물음을 일으킨다. 만일 예를들어 모든 복음서의 기록이 예수의 비유와 하나님나라의 말씀이라면, 결고 "나는-이다"는 없을 것이며, 어떻게 우리는 그러한 언어의 역사성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주목해야하는데, 모든것의 첫째는 단순한것으로 왜냐하면 정보는 요한에 기초하여 의심없이 버리는데 이것은 역사적 가치를 갖지않기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비유를 고려하는데, 그 예로 예수의 사역은 2-3년이 지난것으로,  그는 예루살렘 안밖에거하면서 예수의 처음제자는 세례의 요한이었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세례의 사역을 이끌었다(3:22).
  또한 요한복음내 자료에는 공관복음과 유사하거나 독립적인 것들이 있으나 이야기의 상황차이나 차이있어 보이는것 보이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한 자료들은 사단소유의 내표, 예수형제의 불신앙, 예수의 저자성의 도전, 그리고 예언자와 같은 제목, 메시야와 사람의 아들. 거의 대부분의 기적들은 요한복음에 유일한것으로 그것들은 공관복음서에 분석되어나타난다.
  끝으로,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기초하였 그것들은 정교하며 발전되어 보이는데, 그러한 긋은 예수의 아버지와의 관계인데, 그의 메시아적 저자성, 거룩한 성령과 예수의 기적사역활동의 의미가 그것이다. 
  요한복음의 배후에는 분명한 역사적 전승과 회상이 놓였으며 요한의 정보는 단순히 처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것은 요한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보들은 경중이 분별되어 우리는 모든 복음서의 성격해석에 관하여 알고 그리고 이것은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사역의 윤곽을 묘사하게 알게된다.
  우리의 많은 복음서의 이해에 있어 이전의 정의와 복음서의 양식 이해는 요한에 의지한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삶 해석은 특별한 목적과 수신자를 위하여 이해되었고, 요한은 그러한 양식들을 알맞게 보여주었고, 이것은 재작업과 전승해석내에 독자적 훈련에 기초하였다.  공관복음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말들어진 요한복음서는 본질인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을 지난 신학적 회고의 빛으로 해석되었다. 요한복음은 분명하게 부활과 변호의 구조와 복음 자신의 연합된 통찰에서 이해되었다. 많은 기대속에서 요한복음은 바울의 서신의 하난와 같이 예수의 삶과 죽음의 단어와 범위의 의미를 해석하였는데 그것은 예수 자신의 삶을 모형하거나 특성화하지 않았다. 영적인 우리의 정경은, 요한의 예수목격 인내의 복음으로 그이며 그는 그리스도인와 그 세계를 위함을 의미한다.  


4. 요한복음의 신학


4.1. 기독론

  요한복음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기독론에서의 구별이다. 요한복음은 다른복음서와 몇가지 중요한 주제로 나뉘는데 거기에는 몇가지 요한의 방식으로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이 있다. 추가하여 다른 형상과 예수의 특별한 요한을 향한 지시가 있다. 아래에서는 더 중요한 주제를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형상에 대한 특징적인 중심적 종합을 할 것이다.



4.1.1. 말/말씀

  단지 신약에 있는 것으로 그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19:13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 용어는 또한 헬라의 철학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헤라클리투스에 의하면 말씀은 우주의 영원한 질서의 원리이다.  Stoics은 "말"을 하나님의 정신과 같이 보았는데 우주안에 이유의 원리로, 만물의 조정자이며 지도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사상은 유대 상황에 근원이다.한님은 말씀을 통하여 창조하였다(창1). 예언서에, "주의 말씀"은 거의 의인화하여 이러한 표현은 예언자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그 회복말씀, 삶에 순종과 빛을 가져오며 하나님께로 사람을 안내한다. 


  요한복음은 그 말씀의 묘사를 유대 지혜의 개념으로 잘 묘사한다. 잠8장에 특별히  22-31절에 지혜는 시작부터, 세계의 창조이전에 존재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대리이다. 이것은 수용하면 그들에게 삶과 빛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 거절당한다. Sirach 24:8에 의하면 지혜는 인간존재사이에 거주한다. 그 용어는 "거주를 만들다"는 용어와 같은 근원을 갖는데 그 용어는 말씀의 "거주"에서 요1:14에 사용되었다. 현재 용어 "말씀", 은 구약 70인역 예언서에 기초한다 그러나 그 말씀의 성격은 요한복음안에 성서적이묘 지혜의 묘사적 접근으로 잘 나타난다.
  그 용어 말씀의 이용은 유대와 헬라세계에서 필로에 의하여 설명되었는데 헬라철학의 용어로 유대주의안에 설명을 되었는데 유대 믿음에 의성적인 의미를 주었다. 필로는 말하기를 로고스는 하나님의 그의 창조물들 사이의 매개체로 설명하였는데 그 의미는 우주와 피조물안에 하나님도구이다. 랍비와같이 필로는 두 하나님의 "힘"을 고찰하였고 그 "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밝혔다. 필로는 그 힘은 각별한 성격으로 장조력과 질서나 하나님의 힘이 역할과 같았다. 출25:22설명에 필로는 하나님의 힘을 언약의 방주로 묘사하였는데, 하나님의 두 힘과 두 천사를 일치시킨다.  말씀안에 두 하나님의 힘은, 창조와 역할이며 그 말씀은 "하나님"그리고 "주"로 불리운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창조의 대리와 말씀이 육신되어 하나님심판을 대리한다. 그리고 또한 요한복음은 로고스에서 주와 하나님을 표현하며 요한신학에 예수묘사에 중요하다.


4.1.2 하나님

  요한복음의 기독론안에 날카롭게 제기되는 문제는 시작되는 요한복음의 말로 하나님과 말 둘의 구별과 적용으로 말씀은 하나님이다(1:12)그 예수의 묘사는 더 정확히 요20:28에"하나님"으로, 주와 하나님으로 예수를 고백한다. 그외 예수는 "그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자신이 하나님"으로 책망받았다. 주와 하나님의 한쌍으로 20:28에 도메티안황제르 부터 실제로 비난받는데 그 자신을 세계에 주와 하나님의 절대적 묘사로 하나님과 같은 다른묘사로 요구되었다. 복음서에서 의미하는 요한복음에 "하나님"은 유대적 유일신개념에서 이해될때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agency의 유대범주는 빛을 발한다. 라비적 기록은 saliah형상을 언급하는데 "보내진자"를 의미한다. saliah는 대신 보냄으로 책임이나 사역을 특별히 소개하고 저자에게서 끌어낸다. 탈무드에 의하면 saliah는 다른 것 사이에서 변형되어 일하고 조약을 맺고 결혼을 관할한다. 

  예수님은 유대적 배경의 개념으로 대리로 반대자가 존재하였고 게다가 반대자는 하나님사역의 대리 지배자로 이해하였다. 그러한 대리자는 천사, 족장이나 의인화한 신성한 속성으로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분명해 말씀은 하나님의 지배와 창조대리에 유일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4.1.3. "나는-이다"

  요한복음은 "나는 -이다"라고 말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한 "나는 -이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구속적인 선언으로 그는 인간됨을 나타낸다. "나는-이다"는 선언없는 해석은 어렵다. 구약에 "나는-이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관계하실 때 말씀하셨다. "나는-이다"은 또한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과 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70인역 출3:14에 "나는 스스로 있는자"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존재의 본질이나 유일한 본질, 거룩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분명히 "나는-이다"는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의 인격에 관하여 계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 형식은 구약의 거룩한 존재의 형식에 언급된다. (중략)

4.1.4. 하나님의 아들

  복음서와 요한의 서신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불렀다. 이러한 높은 고귀함은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유일한 관계로, 나아가 "오직 그 아들"이나 "유일한 아들"의 표현을 통하여 예수의 고귀성을 더 강조한다.  (중략)

4.1.5. 메시아

  신약 요한복음서에는 히브리나 아람 용어 메시아의 변형이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17회 사용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두가지가 혼합하여 생겨났다(1:17; 17:3). 예수의 메시야 대화는 공관복음에서 종종 등장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가 메시야 됨을 매우 초기에 이야기중에 들었다. (중략)

4.1.6. 사람의 아들

  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주제의 구절은 다소 문제를 준다. 요한복음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아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1) 사람의 아들은 마지막날의 심판과 같은 예수 섬김으로, 공관복음의 진술로 사람의 아들은 영광으로 온다. (2) 사람의 아들은 죽음과 특별한 연관이 있는데, 특별히 땅으로부터 "들어 올려진" 예수의 존재를 묘사한다. (3) 사람의 아들은 땅과 하늘사이의 중개자와 같은 섬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중략)

4.1.7. 예언자

  복음서는 예수를 "예언자"와 같이 말하나 그 질문은 예수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옳음으로 인도; 그러나 끝없이 만족하게 하지 않으며; 또한 완전히 거절당한다. 예언자는 사람으로 거룩한 영성으로 거룩한 권위를 가진다. 예수는 사람은 장님으로 난 이를 고치셨는데 그사람은 그를 "예언자"로 알았다(9:16). 오천명이 음식을 먹고 사람들은 요구하는데 "이는 세상에 오실 그 예언자다!"(6:14), 그리고 어떤 때는 그가 "그 예언자"라 하였다(7:40).  (중략)

4.2. 이적과 믿음

  요20:30-31에 이적으로 믿음에 이끌리는 것을 기록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표적의 모양은 복음서를 통하는데, 표적의 의미와 역할은 해석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주고, 그러한 표적들은 우리들에게 명확한 과제를 주는데, 표적의 근원과 표적과 믿음의 관계가 그것이다.  표적이라는 용어는 요한복음에서 유일하지 않은 것으로 이것은 공관복음서안에 구별되어 사용된다. 표적은 (1) 표적은 진리의 사역을 분명하게 한다. (2) 끝날에 나타난다.
  공관복음서에는 기적이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그렇지 않다. 물이 포도주되는것(2:1-11); 관원의 아들 치유(4:46-54); 베데스다 거지의 치유(5:1-9); 오천명을 먹이심(6:1-13); 눈먼자를 고치심(9:1-12); 그리고 나사로를 일으키셨다(11:1-44). 물위를 걸으신 것(6:16-21), 부활과 고기 잡으신 것(21:1-8)을 포함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예수을 통하여 나타내심을 정의내려야 한다. 표적을 예수의 신성 시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이 그 사실의 중요한 것이다.

  표적은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예수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그점을 볼 때 아마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표적과 믿음사이의 관계 조직적인 이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편으로 표적을 믿음으로 보지는 않는다.

4.3. 구원

  구원의 관점에서 복음서를 요약하면 예수의 힘있는 기도표현이 있다. "영원한 삼은; 하나님과 그가 보낸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것"(17:3)이다. 여기에슨 몇가지 구원에 대한 요한신학이 발견되다. 첫째로 "영원한 삶"에 대한 용어의 언급으로 공관복음서는 찾을 수 있으나 그러나 요한복음서안에서는 거의 지배적인 용어이다. 둘째로, 이 동사는 현재의 삶가운데서 영원한 삶에 적용되어 등장한다. 

4.3.1. 영원한 삶

4.3.2. 계시대로 구원

4.3.3. 예수의 죽음

4.4. 공동체와 중재자

4.4.1. 중재자

4.4.2.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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